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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드라이버

베이비 드라이버

주인공 안셀 엘고트와 릴리 제임스를 좋아해서 눈은 즐거웠다. 존햄은 또 왜 이렇게 비열하게 잘생겼는지... 각 캐릭터가 가진 서사들이 왠지 스타일리쉬 해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음악을 잘 활용해서인지.


듣던대로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왔고 이 영화가 각종 영화제 음악상을 휩쓴 것도 이해는 감.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게 영화에 독이 되었다고 생각함. 영화의 개연성이나 전개가 좀 얄팍하고 대충 얼버무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음악을 틀기 위한 전개 같았음. 제일 어이없었던 건 악당들의 일일 수장역을 해왔던 케빈스페이시가 희생?하는 장면이었다. 예? 갑자기 여기서요? < 이정도의 황당함이었음. 


게다가 주인공 을 나쁜놈에게 이용 당한 착한 청년으로 만들기 위해 끼워넣은 여러가지 장면들... 차를 훔치며 미안하다 사과하고 가방을 던져주거나, 살인을 해야할 위기가 닥쳐도 주인공의 총은 상대방의 정강이를 정확히 맞히며 겨우 위기를 모면하는... 이런 인위적인 장면이 김 빠졌다. 결국 주인공은 여기서 누굴 죽이긴 하는데 자신과 주변사람을 위협했던, 누가 봐도 천하의 나쁜놈을 죽이면서 약간 정당방위? 식으롴ㅋㅋ 만들어버림. 그래봤자 범죄자일 뿐인데... 나조차 주인공에게 떨어진 형량을 듣고 '그렇게 길게 옥살이를 해야하나?' 했음. (25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아무튼 눈과 귀 즐겁게 그냥 가볍게 보고 말 영화였다.


베놈

베놈

(스포) 이 영화의 장점은 톰하디의 얼굴을 계속 볼 수 있다, 주인공이니까 계속 나온다, 대사도 많다..입니다. 그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톰하디의 직업이 기자라는 걸 보자마자 설정 오류 삐뽀삐뽀 경고음 울림. 톰하디가 기자...? 차라리 앞집에 사는 락 매니아가 더 잘 어울림. 여자친구 역도 미스 매치였다. 외모는 둘째치고 둘이서 활활 타오르는 연애를 해야하는데 너무나 어색한 것임. 케미가 안 산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겠쥬? 캐릭터 매력으로 이끌어가야할 전형적인 히어로물 구조였는데 캐릭터 합이 안 맞는 건 꽤 문제라구 생각했다. 설정도 그러쿠..

그나마 괜찮았던 건 빌런 역을 한 리즈 아메드다. 멀쩡한 얼굴로 빌런 특유의 개똥철학을 펼치는데 선한 인상이 미묘하게 잘 어울렸음. 하지만 요즘 히어로물 빌런들의 논리는 다 비슷비슷해서 그런지 서사가 좀 얄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간들을 모두 잡아먹고 지구를 차지하겠다던 베놈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감상인듯. 나 역시 그렇고요... 빌런인지 히어로인지 구분 어려운 히어로라고 들었는데 보고 나니 전혀... 이것은 그냥 착한 히어로물임. 상당부분 삭제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이 들어간다 한들... 띵작이 되긴 힘든 'ㅅ' 영화라고 생각함.


피아니스트 (2001)

피아니스트 (2001)

(스포있음)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어머니와 함께 산다. 사생활에 간섭하려는 어머니와 맞서 싸울때면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육탄전도 마다않지만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교수생활을 할 때면 주인공은 완벽한 이론과 프로패셔널함으로 무장한다. 감성과 이성, 주인공은 이 두 가지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이중생활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아노를 칠 때 손가락을 제어하는 기술이 이성이라면, 자신만의 감정으로 곡을 해석하고 풀어내는 능력은 감성이다. 이 두 가지 조화로 피아니스트가 탄생한다고 했을 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인가?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이 오랜 시간 억압되자 주인공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게 된다. 남성들이 야한 비디오를 보는 가게에 가서 정액이 묻은 휴지 냄새를 맡는다든지, 자동차 극장에서 이뤄지는 남녀간의 섹스를 보고 오줌을 눈다든지, 성기부위를 자해하고 그 피를 흐르게 내버려두어  생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든지. 솔직히 보는 내내 그 뒤틀린 욕망이 충격적이고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됐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다음이고...

이런 주인공은 결국 매저키스트 같은 성적취향을 가지게 되는데, 오히려 이 부분은 이해가 됐다. 누군가 이 세계를 깨버렸으면 하는 마음, 도저히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 박살나고 싶은 마음이 이해됐다. 그렇게 절박하다보니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린 대학생의 말을 철썩 같이 믿지 않았겠나. 위태롭던 감성과 이성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한 번 날뛰기 시작한 감성은 점차 주인공을 지배해 갔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교수였던 모습은 사라지고 모든 교수가 훌륭하다 말하는 어린 대학생의 피아노 실력에 혼자 태클을 걸거나, 어린 제자의 주머니에 깨진 유리 조각을 넣는 짓을 서슴치 않았다. 

내가 역겹니?

자신의 성적취향을 담은 편지를 보여준 주인공이 대학생에게 글썽이며 묻는다. '역겹지 않을 리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나 과정, 서사를 보여주지 않은 채 결과만을 들이밀며 사랑해 달라는 협박, 애원에 가깝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대학생을 교감의 대상이 아닌 '도구'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해 줄... 주인공에게 사랑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욕망인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해맑은 대학생의 인사를 받으며 주인공은 이 나락에 혼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본인이 아닌 그 누구도 이 세계를 깨뜨릴 수 없다는 깨달음.  ​

보면서 정말 불쾌했는데 보고나서도 후유증이 꽤 커 한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다.왓챠 평점도 낮게 매겼다. 연출이나 연기, 대사 모두 불만은 없었지만... 내용이 정상이 아니잖아! 싶은 것이다. 도대체 이 영화를 누구에게 추천한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떠오른 헤르만 헤세의 명언.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의 일부인 어떤 점을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영화에 부정적 감상을 뱉다가도 이 말을 떠올리면 뜨끔하게 되는 것이다. 혹시 억압하는 환경적 요인을 만나게 된다면 모르는 일이다. 나 역시 변태가 되거나 광기를 드러내게 될 지도. 모두가 그런 여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이 영화를 완벽히 싫어하거나 배척할 수 없을 것이다. 


펠리니를 찾아서

펠리니를 찾아서

(스포있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집안의 천덕꾸러기인 '루시'가 이탈리아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그 감독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 루시는 영화 내내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행동을 많이 한다. 스쿠터 잃어버리기, 짐가방 잃어버리기, 약속을 해놓고 기차 잘못 타기 등등. 혼자 다니는 어린 여자 여행객에 쏟아지는 남자들의 관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럼이 들어간 초콜릿을 잔뜩 먹어 취한 채 거리를 돌아다닌다든지, 이상한 파티로 흘러들어가 성희롱을 당하고 강간 당할 뻔하기도 한다든지(이건 루시의 잘못보다 남자들이 나쁘고 잘못한 거지만) 영화 내내 강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 같은 인상을 줘서 솔직히 답답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계속 본 이유는 감독을 결국 만나긴 하는지, 만나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그게 도대체 뭐길래 이 소심한 여자가 용기를 내고 움직이게 만든 건지.. 가 무척 궁금했다.

루시가 좇은 감독은 '페데리코 펠리니'라는 이탈리아 유명감독이고 실존 인물이다. 영화 내내 펠리니 감독의 영화가 불쑥불쑥 등장하고 특정장면은 노골적으로 오마주를 하기도 해 감독이 얼마나 펠리니의 팬인지 알 수 있었다. 오죽하면 팬메이드 영상을 영화라고 내놓으면 어떡하냐는 비꼼을 보기도 했음. 

이 영화 주인공 루시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의 주인공 젤소미나의 의상 역시 닮아있다. 

 

루시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중 <길>을 가장 좋아한다고 얘기했고, 루시의 엄마 역시 영화<길>을 보자마자 여자주인공이 루시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자신을 비관하는 <길>의 여주인공에게  삐에로가 말한다.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어."라고. 루시가 꽂힌 대목인 것이다.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기만 하던 루시에게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말해준 것은 다름 아닌 펠리니 감독이었던 것. 가만히 있는 돌에게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영화<길>의 내용은 '네 인생은 자유야! 뭐든 해봐!'라고 말하는  루시의 엄마,이모와 대조적이었다. 행동하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는 거 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비단 루시뿐만이 아닌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털이 루시에게 제발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며 다급히 루시의 손에 반지를 끼워준 남자는 루시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 두번째 '펠리니'였던 것은 아니었을까...갑자기 분위기 서프라이즈.


스텝포드 와이프

스텝포드 와이프

포스터 니콜키드먼이 너무 예뻐서 그 모습 보려고 틀었는데 정작 긴 금발에 날아갈듯한 선녀옷 입고 나오는 건 몇 분 안 됨. 영화 내내 니콜은 위 썸네일의 헤어로 나온다.

영화 내용 자체도 엄청 아쉬움을 많이 남는, 페미니즘적인 이야길 담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못 된 영화임. 설정은 굉장히 신박하고 좋았는데... 알고보니 1975년에 소설 원작의 영화가 한 번 나왔는데 그걸 또 리메이크한 거라고 함. 원작이든 75년영화든 본 적이 없어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리메이크인데, 좀 더 생각해서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영화에서 일어난 갈등, 그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남편(남성)'의 선택으로 위기를 극복한 부분임. 게다가 '이 모든 계략은 여자가 만든 거였다!' 하고 남편들이 이용당했다는 식으로 빌런에게 책임전가하는 것도 별로였고, 그 빌런은 '남자에게 배신 당해 미친 여자'여서 ㅋㅋ 뭐하자는 건가 싶었음.

세탁기운동이랑 입에서 지폐 나오는 장면 없었으면 이 글도 쓰지 않았을테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B급 감성은 나쁘지 않았음을..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어른들의 손을 전전하는 아이 메이지의 시선으로 본 영화다. 메이지는 또래에 비해 조숙하다. 응석을 부리는 일도 적고 떼를 쓰는 일도 적다. 어른이 권유하는 모든 일에 응하고 따른다. 메이지의 성격이 본래 순한 것도 있겠지만 성공해 커리어를 이어가려는 아티스트 엄마와 가정에 관심없는 아빠의 영향도 한 몫했다. 어른들의 편의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메이지가 종국에 '배를 타고 싶다.'고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비로소 누군가의 손을 잡지 않고 힘차게 앞서 뛰어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원작은 헨리제임스의 소설로 19세기 배경으로 쓰인 이야기를 현대물로 잘 각색했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우리는 종종 이야기 하지만, 가끔 인간에게 질릴 때면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아이는 그러지 못함. 여러가지 이유로 혼자 다닐 수 없는 아이는 그야말로 관계속에 항상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딸로, 누군가에겐 수양딸로, 누군가에겐 동료의 아이로, 누군가에겐 돌봐야 할 일로. 관계에 질리면 인연을 끊고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면 되는 어른과 달리 아이는 다른 방법이 없다. 싫든좋든 그 관계 속에 존재해야하는 것임. 그러면서 아이는 그 상황과 관계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일임.

영화를 보다보면 자신의 감정이나 편의를 위해 메이지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어른들에게 쉽게 분노하게 되지만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애를 위하여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생각해보니 마냥 욕할 것만은 아닌 것 같음. 아이에게 시간을 쏟지 않는 어른들을 욕하기엔 나 역시, 나의 삶이 아직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줄리안무어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어." 

부모가 되면 삶이 한번 크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대사가 있을까. 자신의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사랑. 감당할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사랑에 부모1회차인 본인 역시 혼란스럽다는 걸 줄리안무어가 잘 보여줬다. 그런 줄리안무어를 안아주는 메이지를 보며 과연 아이를 '내가 돌봐야하는 어린 존재'로만 볼 것인지, '서로 존중하고 기댈 수 있는 동반자'로 볼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건 개인의 선택 같음. 그리고 줄리안무어는 뒤늦게 후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그리구 링컨(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메이지의 조합이 너무나 좋았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