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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죽은 형의 기일 맞춰 고향을 방문하게 된 차남 가족. 

동네에서 의원을 하다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의사 선생님'이라는 체면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버지, 여전히 죽은 아들이 최고인 어머니, 형의 자리를 메꿀 수 없는 실직 상태의 차남,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다 차남과 결혼한 여성, 그리고 피아노 조율사가 꿈인 그녀의 아들, 부모님의 집에 들어와 신세 좀 지려는 여동생 가족 등 각자 처한 상황과 속내가 제 각각이지만 이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서 그런지 금세 잘 어우러진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간 유카리가 아들을 그리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던 것. 두 사람 모두 사랑했던 가족을 잃은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일까. 아들의 결혼이 못마땅했던 어머니와 아들과 자신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다며 섭섭함을 토로하던 며느리가 진짜 가족이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함. 가족이 되는 요소엔 핏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장면이 아닐까.

가장 좋았던 캐릭터 역시 유카리였다. 일단 그 중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면모를 갖추지 않았나. 개인적으론 마스크도 넘 상큼하고 내가 좋아하는 타입... 보면서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거 같음. 시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도 보란듯이 딸을 낳은 결말도 좋았고 예의있게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강한 느낌이었다. 가장 싫었던 타입은 여동생의 남편이었고... 말만 번지르르 하고 실속 하나도 없는 그 느낌이 ㅜㅜ 싫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부분. 걸어도 걸어도 그 세대차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그 간극을 좁힐 순 없었다는 결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우리는 함께 흘러가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기억을 공유한다. 기억의 공유, 그것은 두 세대간의 일만이 아니다. '노란나비는 원래 겨울을 견딘 흰나비래.' 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계속하는 한.


사울의 아들

사울의 아들

우린 예전에 죽었어.


이 한 마디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존더코만도'로 명을 이어가고 있는 사울은 사실상 죽은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밀어넣고, 그들의 옷가지를 치우고, 독일군의 부름에 재깍재깍 움직이며 밥 먹고 사는 걸 삶이라고 보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 

연합군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존더코만도 모두 함께 반격을 하는 건 어떠한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것보단 나은 삶이라고 볼 수 있나? 거기에 자유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나? 몰살 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그저 본능이 아닌가?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소년을 묻고 장례를 치뤄주는 것은 아마 죽음을 목전에 둔 사울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유의지이자 '삶'이었을 것이다. (존더코만도는 보통 4개월정도 이용당하고 몰살당했다.) 단순히 삶을 흉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짜 '랍비'로 진짜 장례를 실현하고자 했다. 

좁은 비율의 스크린과 핸드핸들 기법으로 멀미나는데 그만큼 몰입도도 좋았고 끔찍한 장면들을 아웃포커싱으로 자체 검열해주는데도 너무나 끔찍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은 못 할.. 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영화


더 포스트

더 포스트

음 일단 그냥 실재 사건 기반의 언론 영화임. 영화를 보기 전에 대충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고 끝도 마찬가지 였음. 오히려 어떤 이야기나 갈등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는 게 반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주인공 캐서린 그레이엄의 인생을 끼얹었다는 점이다. 45년 전업주부로 살다 남편이 죽고 커다란 신문사의 경영진이 된 캐서린의 서사가 구구절절하지도 않고 정말 산뜻하게 얹어졌다. 그런 장면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어떤 대사도 없이 여성들이 걸어가는 캐서린을 눈을 좇는 부분. 그리고 캐서린이 방문을 열었더니 양복입은 남자들로 가득한 부분임. 뭘 보여주고 싶은지 감독 의도가 정말 투명하게 느껴지는 연출이었는데 난 원래 인위적인 거 좋아해 

스티븐스필버그는 그냥 영화를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컷을 자르는데 전혀 고민이 없었던 것처럼 전개가 시원시원했고 그의 헐리웃(?)연출도 익숙하고 편안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좀 웃기고 싶은 욕망이나 장난 치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생기는 모양인지 시리어스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장된 구도, 연극적 연출(닉슨이 통화하는 실루엣장면 ㅋㅋ) 등이 느껴져 즐겁게 봤음.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히피가 주고간 문서를 밴에게 건네며 주절주절 히피의 모습을 묘사하는 기자1의 장면임. 

영화 초반에 캐서린과 밴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이미 메릴스트립과 톰행크스 연기대결 시작됨ㅋㅋ 두 사람이 연기하는 거 보면 넘 즐겁고 그러타.  

이번 영화를 통해서 펜타곤페이퍼 사건에 대해 좀 더 알게 됨. 베트남 전쟁에 대해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연설했을 거라곤 생각 못했고 ㅋㅋ 물꼬는 뉴욕타임즈에서 틀었지만 보도중지되자 워싱턴포스트에서 이어 보도한 건 전혀 모르고 있었음. 그리고 퓰리처상은 뉴욕타임즈의 몫이었다는 것도.. 좀 안타까운 건 베트남의 입장을 짧게라도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한국인인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싶지만.. 쇼코의 미소였나 거기서 봤던 베트남 사람 이야기도 생각나고 그랬다.


한니발

한니발

한니발

처음엔 멘탈리스트 같은 먼치킨 수사물인가 싶었다. 왜 한니발 같은 살인마에게 조롱 당하면서도 착착 다른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식의.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살인사건은 쌓여나간다. 초반엔 범인을 잡거나 죽이는 식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건 하나하나의 무게를 주인공이 고스란히 짊어진다. 때문에 에피소드 하나라도 소흘히 보면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 못할 확률 높음. 물론 난 꼼꼼히 봐도 이해 못했지만^^ 보다보면 살인사건은 메인 사건(한니발과 윌의 관계)을 진전시키기 위한 고춧가루 같은 역할.. 정도에 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엔 마음에 드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우선 

1.우아한 핑퐁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대부분은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라 말들도 많고 서로의 핑퐁 죽이 잘 맞는다. 특히 정신과전문의라는 직업을 가진 한니발은 다소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한 말들을 많이 뱉는데 너무 좋아서 받아적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음. 아마 내가 모르는 인용 같은 것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됨.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번 보다보면 보일지도 모르니까. 원작도 보고싶다는 생각했음.

2.미술 
수준이 높다. 어느정도냐면 이런 해괴망측한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유가 '우리 이런 거 미술로 잘 만듦'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술, 그리고 그걸 활용한 연출력도 상당하다. 근데 한니발 팀에 CG잘 하는 사람은 없는듯. 특히 불 CG는.. 어이없어서 웃음 터진 적 있음. 

3.캐릭터 매력  
한니발을 계속 보는 이유 95%가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주인공 윌의 캐릭터가 아주 독보적이다. 관련 2차장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짐.. 

잔인한 거, 징그러운 건 못 보는 사람은 피해야한다. 왓챠는 그런 미술을 다 블러처리 해놔서 보기 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아쉬움 마음이 솔직히 더 컸음.


화이트 채플

화이트 채플

화이트채플1 
에피소드 3개짜리.나는 좀 먼치킨스러운 장르를 좋아하는데 여기 주인공은 좀 무능한 편이고 수사에서도 좀 답답스러운 면들이 있음. 아니, 연쇄살인범 잡으러 가면서 총은 왜 안 들고 다니지? 하지만 캐릭터 모두 좋고, 카피캣이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으며 영국 특유의.. 현대이지만 시대물 같은 느낌이 좋다. 그리고 뒤늦게 블랙베리 뽐뿌옴;; 

화이트채플2 
이것도 역시 에피소드 3개. 조직, 갱이야기는 확실히 재미없다는 평이 많다. 국가가 거대 조직을 이용해 동네 평화를 유지한다.. 는 판타지가 어느 나라에나 있나 봄. 그냥 등장인물들 관계성 보는 재미에 봤음.   

화이트채플3 
작정하고 만든 느낌. 이건 에피소드도 6개고 모든 에피소드가 다 재밌음. 집안 사람 모두 학살당하는 에피소드가 가장 무섭고 흥미진진했다. 로맨스를 끼얹으려고 하지만 다 잘 안 돼서 재밌음.ㅋㅋ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본 지 좀 돼서 감흥이 이전 같진 않으나 
눈물,콧물 쏟으며 봤던 기억을 살려보자면 (스포있음) 

먼저 줄리아가 커다란 냉장고 휴대폰을 들어올릴 때부터 아 이 영화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게 굉장히 유쾌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예감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신인 시절의 카메론 디아즈를 보는 눈의 즐거움! 그 러블리한 입매가 활짝 펴질 때마다 나도 웃고,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을 때엔 귀여워서 나도 울었다. 이 멋진 배우들은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커리어우먼에 낯간지러운 표현을 싫어하고 해본 적도 없으나 구남친을 되찾아오겠다는 일념의 28세 여성과 부잣집 딸이지만 사랑을 위해서 모든 걸 다 포기할 수 있는 20세 여성. 너무나 상반돼 한 남자를 두고 치고 박는 전쟁! 같은 서사가 떠오를 수 있으나 사실상 영화 내용은 전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구남친과 유람선을 탄 줄리아가 고백 타이밍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기회를 날려버리는 장면이다. 다리 밑 그늘이라는 낯설어 두근거리면서도 은밀한 공간이 설치됐지만 줄리아는 고백하지 못했고 이내 그늘을 빠져나와 유람선엔 햇살이 쏟아진다.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아 기회가 날아가 버렸구나, 아무 대사가 없어도 깨닫고 만다. 미친 연출력.. 

음악도 환상적이다. 가짜 남친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선 '이 영화 뮤지컬 영화였나?' 장르를 의심할 정도였음. 선곡은 하나 같이 상황에 맞는 가사들로 구성되어 있음. 영화를 보면서 OST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까먹고 안 함) 

칭찬할 거 또 있다. 바로 캐스팅. 줄리아로버츠야 이런 장르에서 항상 최고구^^ 춤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이친구나 미워해야 하는데 너무 사랑스러운 약혼녀 등.. 진짜 다들 캐스팅 적절한데 정작 남자주연배우는...! 응! 

두번째로 좋았던 장면은 바로 요리평론가인 줄리아가 카메론에게 음식에 비유해 설명하던 장면이었다. 너는 고급요리이고 네 약혼자는 젤리를 원해!라고 하자  '그럼 젤리가 될래!' 하고 울상을 짓던 카메론 디아즈. 그런 무논리가 바로 사랑의 속성이지 않을가? 너무너무 귀여워서 카톡 알림말로 해놓음ㅋㅋ 그리고 줄리아가 바닥에 누워 손가락에서 빠지지 않는 반지를 보여주는 부분도 너무너무 귀엽고 ㅠㅠ 호텔 복도에서 직원에게 같이 담배피길 종용하고 위로받는 장면도 너무너무 좋았음 ㅠㅠ 결혼식에서 신랑신부를 눈으로 좇는 부분에선 정말 제 눈물 폭발했구여..(근데 이전부터 울고있었음) 결말까지 퍼펙트했다. 여러모로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영화였음. 인생영화 반열에 올리겠다^^//

- 마이클은 키미를 쫓고 있지? 
- 그래. 
- 넌 마이클을 쫓고 있고? 
- 그래.  
-널 쫓는 사람이 있어? 아무도 없지, 그치? 그게 바로 답이야. 
- 아냐.  
-맞아! 쥴스, 넌 그 사람이 아니야!  
 
*

-네가 마이클이라고 해. 넌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 있는거야. 넌 후식으로..크렘블레를 주문했어. 정말 근사하고, 달콤하지. 화가 날 정도로 완벽해. 갑자기 마이클은 깨달았어...자기가 크렘블레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뭔가 다른 걸 원해. 
-그가 원하는게 뭔데요? 
-젤리 
-젤리? 왜 젤리죠? 
-그는 젤리와 함께일 때 편안하니까! 젤리가 그를 편안하게 하는거야.나도 알아, 크렘블레와 비교하면 젤리일 뿐이지만, 그거야말로 그가 필요로 하는거야. 
-그럼 나 젤리가 될래. 
-크렘블레는 절대로 젤리가 될 수 없는거야.넌 절대로 젤리가 될 수 없어. 
-난 젤리가 되어야만 해요. 
-넌 절대로 젤리가 될 수 없다니까. 

*

-방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나요? 
-아뇨, 아녜요. 그냥 나와있는거예요. 이 방은 금연실이라서요. 
-여긴 금연층이기도 하지요.로비로 내려가실 수도 있을텐데요. 
-차라리 날 체포하지 그래요?진심이예요.난 위험한 범죄자예요.난 순진한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해요.당신은 시민 자격으로 체포할 수 있어요.난 저항하지 않겠어요.세금 포탈 혐의로 알 카포네를 잡은 것처럼요. 
-도와드릴까요, 손님? 
-담배 피워요, 리차드? 
-네, 피우지만... 
-여긴 금연층이다? 당신 빼고 누가 알겠어요? 
-우리 할머니는언제나 그러셨죠..."이것도 역시 지나갈거야."라고. 
-고마워요, 리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