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아들

사울의 아들

우린 예전에 죽었어.


이 한 마디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존더코만도'로 명을 이어가고 있는 사울은 사실상 죽은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밀어넣고, 그들의 옷가지를 치우고, 독일군의 부름에 재깍재깍 움직이며 밥 먹고 사는 걸 삶이라고 보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 

연합군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존더코만도 모두 함께 반격을 하는 건 어떠한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것보단 나은 삶이라고 볼 수 있나? 거기에 자유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나? 몰살 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그저 본능이 아닌가?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소년을 묻고 장례를 치뤄주는 것은 아마 죽음을 목전에 둔 사울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유의지이자 '삶'이었을 것이다. (존더코만도는 보통 4개월정도 이용당하고 몰살당했다.) 단순히 삶을 흉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짜 '랍비'로 진짜 장례를 실현하고자 했다. 

좁은 비율의 스크린과 핸드핸들 기법으로 멀미나는데 그만큼 몰입도도 좋았고 끔찍한 장면들을 아웃포커싱으로 자체 검열해주는데도 너무나 끔찍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은 못 할.. 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