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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크리스티전집1-빛이있는동안

애거서크리스티전집1-빛이있는동안

여름을 맞이하야 애거서 크리스티 단편집을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차를 보니 몇 작품은 영드 <마플>로 접하기도 했음. 찾아보니 황금가지에서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은 총 79권으로...! 존잘인데 다작까지 한 작가 애거서. 난 A세트(1~10권)를 구매했고 이 글은 그 중 가장 첫번째 책, <빛이 있는 동안>을 읽으면서 틈틈이 메모를 한 게시물이 될 것이다.

 

꿈의 집

다 읽고도 뭐지??? 머릿속 물음표만 뜨다가 덧붙이는 글 보고 이해했다. 초창기 그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쓰기 시작한 글.. 그래서 부족하지만 점차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기점이라는 것.

 

‘그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이야기는 내 안에서 자라났다.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한가한 날이면 나는 그 이야기에 살을 붙이곤 했다.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슬픈 결말로 끝났고, 때로는 아주 고상한 도덕적 취지를 지니기도 했다.’

 

이야기를 심심풀이 땅콩에 비유한 거 너무 인상 깊다. 대단한 메세지와 방대한 세계관을 담은 이야기를 써야된다는 생각에 쓸 엄두도 나지 않아 한 글자도 쓰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겐 정말 필요했던 말. 단편 <꿈의 집>은 확실히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애거서가 초기에 어떤 글을 썼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글이었다. 애거서는 이야기꾼이다. 별 의미없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즐길 수 있는.

 

여배우

오...! 솔직히 제대로 된 애거서 크리스티 글을 읽은 건 이 단편이 처음인데 (꿈의 집은 위 내용대로 약간 습작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제외함)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놀람. 일단 난 외국번역소설을 그렇게 즐겨읽는 편이 아니어서 기대가 별로 없었는데 짧지만 굉장히 흡인력 있었고 예상치 못한 반전도 있었다. 요즘 세대는 영화, 드라마, 책등 다양한 콘텐츠로 다양한 결말을 봤기 때문에 이젠 반전이 있을 기미만 보이면 나 역시 대충 눈치를 채는데 이건 전혀 예상을 못했음. 이 책을 100년 전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더 두근거리는 부분임.

 

 


아직도 가야 할 길

아직도 가야 할 길

올해 초에 읽은 책인데 인상 깊은 구절과 생각을 메모해 놨길래 여기에 정리해 본다. 책구절은 진한 색으로, 내 생각은 연한 색으로 표시함.

 

일단 저는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책을 추천 받았을 때도 심드렁이었고.. 결국 동생회사에서 나오는 도서지원비 남은 걸로 주문했다. 무척 두껍고 무거워서 들고다니기 버거웠으나 오랜만에 카페에서 책장을 넘기고 싶어서(평소 전자책만 들고다님) 이직 면접 보는 날 들고나갔다.

 

* 그중에서도 특히 아내 릴리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항상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배우자로서, 어머니로서, 심리치료로서, 인간으로서 그녀의 지혜가 그녀의 것인지 내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 힘들게 돼버렸다.

 

인상깊었던 서문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는 이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대신에 드러내놓고 또는 은근히 자신이 지닌 어려움, 걱정, 문제가 엄청나다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첫 장에서 빼앰 쿨하게 인정하고 시작하기.. 여기서부터 정신 못차리기 시작했구요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당면한 문제를 두려워하면서 피하려 든다. 문제를 질질 끌면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문제를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는 문제를 잊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약을 복용하여, 결국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마비시킴으로써 고통을 안겨준 문제를 잊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주변에서 맴돌려고 한다. 문제 안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문제 밖으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약을 술로 바꾸면 내 얘기 같음..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가. (중략)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 느낌은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계획을 세우고 일의 순서를 정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왔으니 시간의 문제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만약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면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고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면 시간을 잘 이용하고 싶어진다.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냐는 물음에 당연히 내 대답은 노... 였구 잘못된 것이라구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싫은 일을 먼저 빨리 해치워놓구 오롯이 즐거운 시간을 느긋이 즐긴다는 것. 이 문제에 대해 이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설거지를 미루는 습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이것이 문제라고 파악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미루려는 나와 싸우고 있다. 다소 원시적인... 방법으로 어느정도 고쳐져서 많이 미뤄봤자 다음날인 수준이 되었지만 정말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부지런해 진다 는 쉽지 않은 일이다.

 

*(중략) 나는 기계와는 관련 없는 것들에 시간을 집중투자하기로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가까이 있는 수리공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것은 내 선택이었지 내가 저주를 받은 것도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무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또한 이제 나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결함 없는 어떤 이도 기꺼이 시간을 낼 마음만 있다면 무슨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주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지 않았던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지적,사회적,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치인 사람은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기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뿐. 그리고 시간을 들이지 않은 건 자신의 선택이라는 이야기.

 

*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마치 바보처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전,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 해결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많은, 아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문제로 인한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이 문제는 다른 사람 때문에,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 때문에 생겼어. 그러니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내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해. 이건 정말로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 신경증인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려 하고 성격 장애인 사람들은 응당 져야 할 책임조차 피하려 든다. 신경증잉ㄴ 사람들은 세상과 갈등이 생기면 곧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곧바로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중략) '신경증 환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중략) 그러나 어른으로서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면 우리의 선택은 거의 무한하다. 선택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빈번히 두 가지 나쁜 것 중에서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중략) 기본적으로 모든 환자들은 '똑같은 문제, 즉 무력감, 다시 말해 상황을 대처하고 바꿀 수 없다는 두려움과 심적 믿음이라는 똑같은 문제'를 갖고 심리 치료사를 찾아온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환자들이 겪는 이러한 '무력감'의 뿌리에는 자유의 고통에서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자신의 문제와 삶에 책임지지 못하는 패배감이 깔려 있다. 사실 자신의 권한을 버렸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치유가 되려면, 그들은 성인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 문단을 정리하면서 얼마 전 읽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은 아마도 이 무력감에서 기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오랫동안 노력해서 겉보기에도 유익하고 쓸 만한 세상에 대한 견해를 다듬어왔는데, 그것이 잘못됐다고, 지도의 대폭 수정을 암시하는 새로운 정보와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작업에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므로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하고 질려버린다. 그래서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흔히 새 정보를 무시해버린다. 이렇게 무시하는 행동은 종종 그저 피하는 것 이상이 되어, 새로운 정보를 거짓되고 위험하고 이단적이며 악마의 산물이라고 헐뜯는다. 실제로 그것을 뿌리째 없애고자 운동을 벌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현실에 대한 견해에 맞추느라 세상을 뜯어고치려고도 할 수 있다. 지도를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새로운 현실을 파과하려 드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사람은 먼저 세상에 대한 자신의 낡은 견해를 수정하고 고치기보다는 그것을 끝까지 옹호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이다.

 

*균형 잡기라는 훈육과 그 근본이 되는 포기에 관해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먼저 소유해야한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이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 이긴 적도 없으면서 이기기를 포기하면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셈인데, 그것이 바로 실패자인 것이다. 정체성을 포기하기 전에, 자신을 위해 먼저 그것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자아를 잃기 전에, 당신의 자아를 발달시켜놓아야 한다. (중략) 타인의 정신적 발전을 위해 자신의 정신적 발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자신을 훈육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돌볼 때 절제된 행동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힘의 원천이 돼줄 수 없다. 확신컨대 사랑의 본성을 면밀히 검토해 나가다 보면 자신을 사랑하고 동시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결국 그 둘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중략) 수동적 의존성이 있는 결혼 생활은 오래 지속되고 안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건전하거나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안심의 대가는 구속이며 그러한 결혼은 결국 서로의 성장을 지연시키거나 파괴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나는 거듭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건전한 결혼은 오직 강하고 독립적인 두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라고. 

 

*끝으로 우리는 애완동물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의존성을 기르고자 한다. 그들이 자라 집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자기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난롯가에 믿음직스럽게 엎드려 있기를 바란다. 애완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로부터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미국의 많은 군인들이 영어로 대화할 수도 없는 독일, 이탈리아 또는 일본의 '전쟁 신부들'과 동화 같은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신부들이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느낌, 소망, 목표를 아내에게 투입시켜 애완동물에게서 느끼는 것 같은 친밀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영어를 배움으로써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는 다른 생각과 의견과 목표를 갖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사랑이 끝나고 말았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어떤 것이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보라. 그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든지 믿어보라. 상처 입을지 모른다 해도. 누구에게든 의존해보라. 상대가 실망시킬지 모른다 해도. 애착의 대가는 고통이다. 고통을 감내하려고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많은 것들이 부족한 채로 살아야만 할 것이다. 즉, 아이를 갖는다든지, 결혼, 섹스의 황홀감, 야망, 우정 등 생기를 불어넣고 의미를 주며 인생을 중요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을 비참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혼하는 것이나 직업을 갖는 것이나 아이를 갖는 것이 부모나 다른 사람의 기대 또는 사회 전체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얄팍한 행동이 될 것이다. 부모의 기대에 맞게 사랑스러운 태도로 행동해서 아이를 사랑한다면 그 부모는 아이의 보다 미묘한 욕구에 둔감할 것이고 보다 섬세하게 때로 정말 중요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지고한 사랑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며, 이는 순응하는 행위가 아니다.

 

*(중략) 그리고 사랑의 다른 모든 경우에서처럼 좋은 부모가 되는 데 따르는 괴로움과 변화를 자기 희생이나 순교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보다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더 많다. 변화하고 성장하는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고, 성장하는 아이에게서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쇠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와 세상은 그런 부모를 저 멀리 뒤에 남겨놓을 것이다. 아이에게서 배운 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다. 슬프게도 대부분은 이러한 기회를 잡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간단해 보이는 문제에도 전혀 대답할 수 없거나, 얼핏 보기에는 물리학 이론에서 절대 그정할 수 없는 이상한 선문답을 연상케 하는 대답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만약에 전자의 위치가 그대로인지 아닌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아니다'라고 해야한다. 또 이것이 시간과 함께 변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이에 대한 답도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전자는 쉬고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또 그것이 움직이는 가운데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또 '아니다'라고 해야만 한다. 부처도 인간의 사후 세계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17~18세기 과학의 전통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결코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과학과 상식>

 

우주의 법칙은 아래로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고도의 분화 상태에서 단순한 분화 상태로 흘러간다. 어떤 운동도 없이 완전 미분화된 상태를(물방울 같은) 엔트로피라고 부르고 그렇게 저절로 흘러가는 것을 엔트로피의 힘이라고 하는데 진화라는 건 이 힘을 무시한, 완전히 반대로 나아가는 걸 말함. 이 진화는 육체적 진화와 영적 진화 모두를 말한다. 인류가 영적성장을 해왔다곤 하지만 전쟁, 부패, 오염등의 문제등을 보면 제대로 진화하긴 한 건가? 회의적일 수 있지만 아이를 보호해야한다는 개념이 서양에 15세기쯤에야 생긴 것이나 여러 인권 문제를 생각해 보면 진화하고 있긴 한 것 같음.

 

이렇게 엔트로피의 힘을 역행하는, 인류를 진화하게 하는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타인을 사랑하면서 이렇게 자연법칙을 거스르면서 힘든 길을 선택해 성장한다..는 이야기. 엔트로피의 힘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인간의 게으름이다. 머무려고 하는 성질, 변화하지 않으려는 성질 등이 게으름으로 연결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에 왜요? 하고 되물어보았다면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것. 선(그분)과 악(뱀)을 논쟁시켜야만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충격문단~ 우리를 진화시키는 힘. '사랑'이나 '은총(죽다 살아남은 것처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는데 꽤 빈번히 있는.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많은 정보)' 등은 도대체 왜 우리의 성장을 돕고 진화 시키는가?에 대한 결론: 결국 우리는 신이 되고자 함임. 신이 시작이자 끝이고 알파이자 오메가.

 

언젠가 읽었던 the egg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소설의 주인공이 환생을 하며 모든 인류의 삶을 산다는 설정이었는데 거기서 신이 그랬다. 모든 건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누군가가 되어본다=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영적성장의 맥락에서 아주 흡사하군. 소설쓴 작가가 이 책을 읽었었나싶구..

 

의식이 현실을 부정하더라도, 무의식은 진정한 현실을 파악하고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여러증상(악몽, 불안, 우울증 등)을 내보이는 방법으로 우리 의식에게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식시키려고 노력한다.

 

내 우울증과 나를 공격한 불안은 최고의 경험이었다.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며 또한 사랑받을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을 잘 훈육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감으로써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받고자 노력한다고 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오히려 의존적이고 거머리 같아져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보답을 받으려는 원초적 욕망 없이 자신과 타인을 잘 보살핀다면 우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또 굳이 구하려 하지 않았던 사랑의 보답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수동성과 의존성, 두려움과 게으름 때문에 가야 할 길을 속속들이 미리 보기를 원하며, 매 발걸음이 안전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영적 성장의 여행은 용기와 주체성, 생각과 행동에서의 독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말이나 은총의 조력이 유용하긴 하겠지만 그 길은 반드시 혼자 가야 한다. 어떠한 스승도 당신을 거기에 데려다 줄 수 없다.

 

완독했고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가? 내 자신에게 편견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진 않나? 사랑 받을 준비가 되었나?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인가? 등등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 밤은 아주 길 것 같다. 괜찮아. 토요일밤이라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영화 <러빙빈센트>에서 나왔던 고흐의 편지 일부분을 짧게 접하고 인상 깊어 책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시기별로 편지 내용을 잘 정리했고 그 편지 내용에 맞춰 당시 고흐가 그리고 있던 그림들도 볼 수 있음. 양장에 두껍기 때문에 주로 자기 전에 읽었다. 2018년 겨울밤을 고흐의 편지와 함께 하였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일상생활 속에서 신선한 활기를 유지하는 것은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여기보다 그곳에서 생활하기가 더 힘들겠지. 파리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에 빠지겠니. 조용히,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절망하겠지.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이 세계를 가만히 보면, 선량한 신에 대해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그가 망쳐버린 습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철학자들과 마술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확신했고, 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함, 평온과 헌신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했지. 그는 다른 모든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석, 점토, 물감을 경멸하면서 살아 있는 육신으로 일했고 평온하게 살았네.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의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다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

 

-우리는 <대지>와 <제르미날>을 읽은 사람이다. 농부를 그린다면, 우리가 읽은 작품이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고통의 순간에 바라보면 마치 고통이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끝없이 밀려와 몹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에 대해, 그 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림 속의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이전에 자화상이나 작품으로만 고흐를 접했을 때, 색을 잘 쓰는 강인한 네덜란드인~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안의 고흐 이미지는 180도 달라짐. 그는 사유에 능했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강렬한 작품들은 이제 내 눈에 섬세한 연구의 산물이라고 생각되어지고요... 후반 테오와 빈센트의 편지가 번갈아 나오는 부분에선 두 사람이 완벽히 균형을 이루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과 비이성 같기도 했고 종교와 과학 같기도 했음. 진리를 추구하고 본질을 연구하는 빈센트에게 테오는 마치 종교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백마산장 살인사건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추리소설이다. 이 소설의 성공으로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고 함. (스포있음)


 오빠의 죽음을 미심쩍게 생각한 여동생이 친구..와 함께 오빠가 숨을 거뒀던 장소(산장)를 방문하며 이야기가 시작됨. 밀실살인, 연쇄살인, 암호해독 등이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


영국동요 <마더구스>를 이용한 암호였는데 뭐 언제나 그렇듯 전 전혀 맞출 수가 없었구요^_^ 추리하는 과정도 반 밖에 이해 못한 듯ㅋㅋ 저 동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겠으나 저는 이 책에서 저 동요를 처음 접했네요.. 밀실트릭은 아가사크리스티 소설 많이 접한 사람은 풀 수 있는 수준이었음. 트릭보단 살인을 결심하고 저지른 사람의 스토리에 관심을 많이 두는 나로선 개연성이나 설정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나쁘지 않았음.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과 친구의 관계 설정 조았구.. 여자들이 여기는 남자들 헛소리, 헛물 포인트 의외로 잘 집어내서 좋았음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좋았던 구절


- “서울 애들, 학원이 끝나고 난 뒤에 지들끼리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대단한 것 같더라구. 어디로 가는지, 멋진 곳으로만 가는 것 같더라니까. 몇 달 지나고 나니까 다 알겠어. 어디로들 사라지는지.. 당구장 아니면 극장, 극장 아니면 술집. 걱정 마, 우리는 다 똑같아. 삼시세끼, 밥 포기못하는 이상 똑같어, 우리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란 그러나 가난한 음식은 아닙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그러나 흥이 많은 이들이 그런 음식들을 기꺼워하며 먹게 마련이죠. 이를테면 가진 것은 없어도 산천경계 좋은 풍경에 잘 취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 내가 날씨에 따라서 변하는 사람 같냐구요? <이 전문다 좋음. (중략)날씨라는 게 얼마나 사람 마음을 변하게 하는 데요. 주위 환경에 민감한 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니구요. 저는 제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아주 인심이 후하답니다.(중략)나이 든 교수님이 뭐라고뭐라고 하시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구요. 다만 흐린 날이면 따뜻한 우유에다 카카오 가루를 타 마시면서 이불 밑에 앉아 애거서 크리스티 영화나 보았으면 합니다.


- 고고학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발굴을 하는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발굴을 하면서 많은 사실이 기록되지 않고 헝클어진다는 것을.


- 사십 년 동안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일터로 가서 정해진 일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들고 깨어나 일터로 가고...... 충분하다는 생각...... 그런데 사모님 말씀. "되돌아보면 아무 일도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 그때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웃기는 일은 말이 많은 건 내 쪽이었는데 정작 내가 그 많은 말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아마도 그래서, 말 많은 쪽이 나라서, 그 말에서 도망가고 싶은 내 마음의 어느 구석이 나를 떠밀어 다른 기슭으로 보낸 걸 거다. 그 말이라는 거, 내가 했던 그 많은 말이라는 거......


- 할머니는 아드님을 쫓아 물로 들어갔다고 한다. 눈이 흰 불을 쓴 것처럼 따가웠다고 한다. 아드님은 이미 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바람 속에서 물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물 안이 호박빛으로 환해지고 할머니는 허둥거리는 아드님의 다리를 보았다. 꽉 잡았다. 빛은 사라지고 할머니는 물위로 떠올랐다. 아드님은 눈을 허옇게 뒤집고 실신한 채였다. (...) 그렇게 건진 아드님이 옥에서 어느 날 비명횡사할 때 할머니는 물 안을 비추던 어떤 빛도 보지 못했다.


-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저를 위해서만 사니까... 불안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 시장가에 있는 가페에서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풍겨나오는 생선 냄새를 맡는다. 그 옛날,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어머니와 함께 저녁 무렵이면 함께 시장으로 갔다. 그때 그 시장에서 어머니의 작은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나는 몰라도 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그 생선 냄새를 맡았던 것.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았을 무렵의 냄새......

이 밖에 '신화적 존재', '평화주의자', '예쁜 뒤꼭지', '나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로 시작하는 글', '난쉐와 그 여신이 보호했던 많은 이를 위하여' 등의 전문이 좋았다.


나와 고향이 같고 타지살이 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길게 외국에서 타지살이한 경험은 없지만 이 책에 수두룩하게 적힌 외로움이 공감됐다. 물론 고향에 대한 감상은 나와 조금 다르지만... 읽으면서 수필은 나와 맞지 않다고 투덜거렸지만, 책을 펴서 활자를 눈에 담은 순간 만큼은 모든 걸 잊고 이 지친 소녀 같은 시인이 쓴 글에 푹 빠져있었다. 자기 전 읽기 좋았던 책으로 기억될 것... 이미 고인이 된 작가와 혼자서 내적친분 쌓은 느낌이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호텔

지금까지 읽은 히가시노게이고 책 중에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호텔이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수사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 히가시노게이고가 접근을 달리 한 것, 호텔직원들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부분 때문일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에서 로맨스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던데 이 작품만큼은 약간의 썸..을 느꼈다. 물론 내가 억지로 연결시킨 것일 수도 있음^^ 그정도로 아주 산뜻하게 얹어진 썸이라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본다.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는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의 프리퀄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 <매스커레이드 이브>도 읽었다. 똑같은 주인공들의 과거이야기라 전작보다 재밌기는 힘들고 그냥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할 정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가 낮은 편인데 나는! 재밌게! 봤다! 왜냐면 호텔보다 이브를 먼저 봤기 때문...ㅋ... 이북리더기를 샀는데 그 안에 샘플? 같은 책들이 들어있었고 그 중 하나가 매스커레이드 이브였다는.. 읽고 너무 재밌어서 본작?인 호텔까지 사 본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 ㅠㅠ 혹시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이브 > 호텔 순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