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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얘기

먹고 사는 얘기

이번 주 밀프렙이다. 원래 식비를 줄일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데 생각보다 너무 편해서 앞으로 꾸준히 만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정말 맛 없어 보이는데 소금과 바질을 미친듯이 뿌렸기 때문에 맛이 나긴 함^^ 감칠맛 같은 게 없어서 그렇지... 다진 마늘 좀 넣어주면 훨씬 좋아지는데 까먹었다. 저게 좀 부족하다고 느낄 땐 계란 하나 삶아서 같이 먹는다. 이렇게 만들어서 냉장이나 냉동하다가 전자렌지 돌리면 생각보다 갓만든 느낌이 나서 좋다. 보통 집에 먹을 게 없고 간단히 때우고 싶을 때 편의점에 가는데 이거 만들고 나서 편의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음. 탄수화물 비율 보면 알겠지만 완전 다이어트식도 아님.

 

물론 하루에 이거 하나만 먹진 않는다. 점심시간엔 동료들과 주로 식사를 하고 저녁에 먹거나 함. 주말이 아니면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타입이 아니라... 주중엔 퇴근 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저녁을 빨리 아무렇게나 해치우려는 경향이 있음. 그런 사람들에게 좋다. 뭐 먹지< 이 고민이 지겨운 사람에게도 좋고 퇴근 후 운동해야 하는데 너무 해비한 거 먹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좋음. 폭식한 뒷날엔 한 팩 회사에 들고가서 점심시간에 홀로 먹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내가 요리를 못해서 맛이 그저 그렇다는 사실뿐... 요리 못하면서 레시피 계량 무시하는 세로.. 참고한 영상을 첨부한다.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2주 해먹으니 질려서 다른 레시피 찾으러 떠남.

 

https://twitter.com/tasty/status/1142567964081905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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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Meal Prep Recipes – Tasty

Looking for Weekend Meal Prep recipes? Check out some of our favorites here including Kiwi Banana Spinach Smoothie Meal Prep, Weekday Meal Prep For 4, Balsamic Chicken And Veggies Meal Prep, an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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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사와 짐승

사육사와 짐승

미루는 일에 다분히 천재적이던 나는 툭하면 설거지가 쌓이기 일쑤였다. 하루, 이틀 지나는 건 대수롭지 않았고 설거지를 해놓은 젓가락이 없어서 썼던 걸 또 한 번 썼다가 탈이 났던 적도 있었다. 동생과 함께 살 땐 이런 내 버릇 때문에 자주 싸웠다. 물론 동생도 지지 않고 설거지를 쌓아두었기 때문에 싸움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이런 내 습관이 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올해 초의 일이다. 당시 나는 스캇펫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었는데 그 책에 따르면 일을 미루는 습관, 눈앞의 즐거움을 좇고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 즉,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동시에 이 나쁜 버릇을 얼른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책을 읽기 이전부터 나는 나의 게으름에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한때 영드<미스 마플>에 푹 빠졌을 때가 있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물인데 마플이라는 예리한 할머니가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이야기다. 방영 당시 시리즈 반응도 꽤 좋았다고 알고 있다. 아무튼 거기서 내가 사랑에 빠진 인물은 당연히 마플이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저렇게 늙고 싶다.' < 이 정도였음 ㅋㅋ 사람을 간파하는 통찰력, 예리한 추리, 다정한 심성 등등 확실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내가 그녀를 롤모델로 삼고자 했던 결정적 이유는..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마플은 욕실에 들어가 거울만 보고 바로 나오려고 했는데 삐뚤게 걸려있는 타월을 발견했다. 눈에 밟히긴 했지만, 곧 떨어질 것처럼 심하게 삐뚤어진 건 아니고 그냥 살짝 어긋난 수준이다.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딱히 수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그런 상황의 경우, 마플 그 할머니는 느릿느릿 움직여서 타월을 반듯하게 정돈하고 욕실을 나선다. 칼각을 맞추는 강박증에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의 환경이 마음에 안 들 때, 눈에 밟히는 부분이 있을 때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수정하는 그 부지런함에 매력을 느꼈다. 나의 삶을 해치는, 나의 균형을 깨뜨리는 사소한 일을 맞닥뜨린 순간 행동한다는 것. 나에겐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난 밥통 뚜껑에 때가 좀 끼어있어도 놔두고 냉장고에 버려야 할 음식이 눈에 띄어도 그냥 모르는 척한다. 설거지를 미루는 것도 나에겐 비슷한 이치다.

 

그런데 놀랍게도 2~3주 전부터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다. 

나는 식사를 하면 꼭 후식으로 음료나 달콤한 것(과일, 쿠키) 등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이용해 나만의 룰을 만들었다. 설거지하기 전까지 후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마지못해 고무장갑을 끼고 냉장고 속에 있는 음료를, 찬장에 있는 쿠키를 생각하며 설거지를 한다. 마치 사육 같다. 개나 고양이 짐승을 길들이는 일과 하나도 다를 게 없고 날 더 슬프게 만드는 건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효과가 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 몇 주째 싱크대가 깨끗하고 미뤘다는 죄책감 없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어 보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현실... 이게 나라는 짐승을 길들이는 사육사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살고자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정말 너무 어렵고 죽기 직전까지 이렇게 사육하며 살지 않을까. 슬픈 예감이가 들어버려... 그래도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해피엔딩이라고 해야할까. 모르겠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여행을 왜 가죠

여행을 왜 가죠

예능<대화의 희열>에 김영하 작가가 나온 것을 보고 이 글을 쓴다.

오늘 방영된 이 방송은 주로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여행의 이유>에 걸맞게 여행이 주는 매력과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 등으로 이뤄졌다. 방송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나는 좀 실망했다. 작가의 삶을 엿볼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이야기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난 여행에 별 큰 흥미가 없다. 여행이라 하면 집 밖을 떠나는 것이고, 비행기를 타든 자동차를 타든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돌아다녀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먼 곳으로 가서 호텔에만 있다면 그건 돈과 시간을 버리는 행위에 가깝고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고 보긴 힘들다. 즉, 여행이랑 일단 집 밖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거다. 난 그게 족쇄처럼 느껴져서 싫은 것이고... 인도어 인간에게 3~4일 무조건 외출이라는 건 너무 가혹함.

 

그럼 여행 가서 관광 조금 하고 호텔에만 있으면 되잖아? < 이건 내 성격상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ㅋㅋㅋ 존나 어쩌라는 건지 싶다. 나도 이런 내 성격이... 일단 여행을 가면 본전을 뽑으려는 나의 이 알 수 없는 근성 때문에 무조건 무리한다. (아마도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아서 이곳에 다시 올 일 없을 거라는 강력한 예감 때문에 강행군하게 되는 것 같음) 그래서 3~4일 정도 긴 여행을 다녀오면 병이 난다. 즐거웠지만 다신 보지 말자가 되어서 아마 여행을 더 기피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행의 매력을 못 느끼는 건 아니다. 풍경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집 근처에서 얻을 수 없는 여행지의 풍경들은 정말로 매력적이고 내 키와 시야가 주는 한정적 구도를 사랑한다. 여행을 가서 찍어온 사진을 두고두고 보는 편이고 사진을 생각하면 떠나고 싶어진다. 눈이 쌓인 산이나 벌레 많은 정글 같은 곳도 불사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만 보면. 게다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나보다 나아보이는지 모른다. 출퇴근 하기 급급하고 여유 없는 내 삶에 비해 여행지 주민들은 항상 여유있어 보인다. 순간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 정도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남이 가진 여유를 구경하거나 사진 몇 장 건지러 돈과 시간을 쓸 여유가 내겐 없다. 예전에 같이 일본 여행 갔던 친구가 그랬다. 자신은 여행에 대한 매력을 잘 못 느끼지만, 여행은 부와 여유의 상징이기 때문에 자신은 무리해서라도 간다고.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세속적이고 얄팍한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이 부는 모르겠지만 여유의 상징인 건 맞는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여유. 돈을 지불하면 잠시나마 맛보게 되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녀와서의 현타는 제각각이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월급을 아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 말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곳에서 사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이렇게 외로운 걸 보면.

 

영화 비포선라이즈


너의 만족도는

너의 만족도는

요즘 밥을 잘 먹는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아빠의 전화를 받고 함께 점심을 먹을 때가 많다. 집 떠난 지 10년, 어린애 같던 내 입맛이 어른의 반열에 도달하여 함께 먹을 만했고, 아빠 역시 나이를 먹어 가족을 챙긴다. 떨어져 살 땐 서로 문자나 전화가 뜸했다. 둘만 같이 있으면 어색하기 때문에 되도록 그런 상황을 피해왔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두 번은 함께 점심을 먹는 사이가 됐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절대 안 맞을 것 같던 아빠와도 이렇게 맞물리는 타이밍이 생기는구나. 인생 신기하다, 신기해. 올해 초만 해도 내가 아빠와 이렇게 자주 점심을 먹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인생 정말 신기하지.

 

일주일에 한 번은 평거동에서 밥을 먹는다.

평거동은 부모님이 사는 동네다. 바로 어제도 다녀왔다.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나도 요리를 도왔다. 요리를 도우면서 얼마 전 면접 본 회사에 대해 말했다. 합격이라고 연락이 왔지만, 연봉이 맞지 않아 가지 않기로 했다고. 이곳은 경력직 연봉 후려치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물었다. "여기(고향) 내려와서 너의 만족도는 어때?" 잠시 말문이 막혔다. 솔직하게 답하기 어려웠다. 만족스럽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엄마의 질문은 서울과 고향, 둘 중에 어느 곳이 더 살만하냐는 질문이었을 것이고 나도 그에 맞춰 적당히 대답했지만, 솔직히 삶의 만족도를 객관적으로 따져본다면 지금의 난 높지 않다. 만족스러운 삶? 그런 게 세상에 있긴 하나? 이런 속마음을 내비치면 엄마는 '넌 너무 냉소적이야.'하고 말할 게 뻔하다. 영화<미스 슬로운>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이 이런 말을 한다. 냉소적이라는 말은 낙관주의자들이 자신의 순진함을 보여주기 위해 애쓸 때 쓰는 말이라고.

 

사람은 좀 냉소적이어도 된다.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세상엔 욕망처럼 훌륭한 원동력이 없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것은 죄악이 아님을... 글쓰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현재 내가 <만족스러운 삶>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어젯밤 잠들기 전에 매일매일 무언갈 써 보기로 다짐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4개월. 학창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적응이 어렵진 않았지만 이사 후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 부분이 없지 않다. 한 번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의 계획은 또 얼마나 나를 배신하고 나를 놀래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