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왜 가죠

여행을 왜 가죠

예능<대화의 희열>에 김영하 작가가 나온 것을 보고 이 글을 쓴다.

오늘 방영된 이 방송은 주로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여행의 이유>에 걸맞게 여행이 주는 매력과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 등으로 이뤄졌다. 방송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나는 좀 실망했다. 작가의 삶을 엿볼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이야기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난 여행에 별 큰 흥미가 없다. 여행이라 하면 집 밖을 떠나는 것이고, 비행기를 타든 자동차를 타든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돌아다녀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먼 곳으로 가서 호텔에만 있다면 그건 돈과 시간을 버리는 행위에 가깝고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고 보긴 힘들다. 즉, 여행이랑 일단 집 밖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거다. 난 그게 족쇄처럼 느껴져서 싫은 것이고... 인도어 인간에게 3~4일 무조건 외출이라는 건 너무 가혹함.

 

그럼 여행 가서 관광 조금 하고 호텔에만 있으면 되잖아? < 이건 내 성격상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ㅋㅋㅋ 존나 어쩌라는 건지 싶다. 나도 이런 내 성격이... 일단 여행을 가면 본전을 뽑으려는 나의 이 알 수 없는 근성 때문에 무조건 무리한다. (아마도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아서 이곳에 다시 올 일 없을 거라는 강력한 예감 때문에 강행군하게 되는 것 같음) 그래서 3~4일 정도 긴 여행을 다녀오면 병이 난다. 즐거웠지만 다신 보지 말자가 되어서 아마 여행을 더 기피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행의 매력을 못 느끼는 건 아니다. 풍경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집 근처에서 얻을 수 없는 여행지의 풍경들은 정말로 매력적이고 내 키와 시야가 주는 한정적 구도를 사랑한다. 여행을 가서 찍어온 사진을 두고두고 보는 편이고 사진을 생각하면 떠나고 싶어진다. 눈이 쌓인 산이나 벌레 많은 정글 같은 곳도 불사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만 보면. 게다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나보다 나아보이는지 모른다. 출퇴근 하기 급급하고 여유 없는 내 삶에 비해 여행지 주민들은 항상 여유있어 보인다. 순간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 정도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남이 가진 여유를 구경하거나 사진 몇 장 건지러 돈과 시간을 쓸 여유가 내겐 없다. 예전에 같이 일본 여행 갔던 친구가 그랬다. 자신은 여행에 대한 매력을 잘 못 느끼지만, 여행은 부와 여유의 상징이기 때문에 자신은 무리해서라도 간다고.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세속적이고 얄팍한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이 부는 모르겠지만 여유의 상징인 건 맞는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여유. 돈을 지불하면 잠시나마 맛보게 되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녀와서의 현타는 제각각이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월급을 아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 말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곳에서 사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이렇게 외로운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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