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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만족도는

너의 만족도는

요즘 밥을 잘 먹는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아빠의 전화를 받고 함께 점심을 먹을 때가 많다. 집 떠난 지 10년, 어린애 같던 내 입맛이 어른의 반열에 도달하여 함께 먹을 만했고, 아빠 역시 나이를 먹어 가족을 챙긴다. 떨어져 살 땐 서로 문자나 전화가 뜸했다. 둘만 같이 있으면 어색하기 때문에 되도록 그런 상황을 피해왔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두 번은 함께 점심을 먹는 사이가 됐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절대 안 맞을 것 같던 아빠와도 이렇게 맞물리는 타이밍이 생기는구나. 인생 신기하다, 신기해. 올해 초만 해도 내가 아빠와 이렇게 자주 점심을 먹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인생 정말 신기하지.

 

일주일에 한 번은 평거동에서 밥을 먹는다.

평거동은 부모님이 사는 동네다. 바로 어제도 다녀왔다.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나도 요리를 도왔다. 요리를 도우면서 얼마 전 면접 본 회사에 대해 말했다. 합격이라고 연락이 왔지만, 연봉이 맞지 않아 가지 않기로 했다고. 이곳은 경력직 연봉 후려치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물었다. "여기(고향) 내려와서 너의 만족도는 어때?" 잠시 말문이 막혔다. 솔직하게 답하기 어려웠다. 만족스럽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엄마의 질문은 서울과 고향, 둘 중에 어느 곳이 더 살만하냐는 질문이었을 것이고 나도 그에 맞춰 적당히 대답했지만, 솔직히 삶의 만족도를 객관적으로 따져본다면 지금의 난 높지 않다. 만족스러운 삶? 그런 게 세상에 있긴 하나? 이런 속마음을 내비치면 엄마는 '넌 너무 냉소적이야.'하고 말할 게 뻔하다. 영화<미스 슬로운>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이 이런 말을 한다. 냉소적이라는 말은 낙관주의자들이 자신의 순진함을 보여주기 위해 애쓸 때 쓰는 말이라고.

 

사람은 좀 냉소적이어도 된다.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세상엔 욕망처럼 훌륭한 원동력이 없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것은 죄악이 아님을... 글쓰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현재 내가 <만족스러운 삶>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어젯밤 잠들기 전에 매일매일 무언갈 써 보기로 다짐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4개월. 학창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적응이 어렵진 않았지만 이사 후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 부분이 없지 않다. 한 번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의 계획은 또 얼마나 나를 배신하고 나를 놀래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