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주말에 영화 시카리오를 봤음.(스포유) 
주변 친구들이 시카리오 재밌다고 해서 봤는데 보고 난 소감은 '이게 재밌다고 표현할 수 있는 영화야?' 임미다. 유쾌하고 전개가 빠른 폭주기관차 같은 류의 영화가 아니라, 천천히 늪에 흠뻑 빠지게 되는 스타일의 영화임. 발목을 감고 있는 닻의 무게가 '현실'이라는 점에서 어마어마하게 무겁고요. 물론 보고 나서 여운...이라기 보단 후유증이 있고요. 재밌는 영화라기보다 잔혹하게 잘 만든 영화라고 하는 게 좀 더 이 영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깝지 않나 싶음. 개인적으로 보고나서 기분이 별로 였는데 이상하게 다시 보고 싶고 계속 생각나는 영화였음. 

이 영화는 스릴러다. 무법지대에 떨어진 주인공이 겪는 공포를 고스란히 옮겨서 무척 괴로움. 게다가 진행되는 작전에서 소외되거나, 파워로 찍어누르면 찍어누르는 대로 눌리는 상황 (권력이든 물리적인 힘이든), 나름의 이성적인 주장이 조직에선 이상한 고집으로 비춰지는 것 등등 사회에서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고충들이 촘촘히 널려있어 답답시럽다.   

극중에서 베니치오가 에밀리에게'너는 늑대가 아니다. 여긴 늑대소굴이다.'라고 선을 그어서 그런지 대다수의 영화리뷰에서 베니치오는 늑대, 에밀리는 아무 것도 몰랐던, 온실 속 화초 내지 우물안 개구리에 비유되는 것 같다. 그건 에밀리를 너무 과소평가 한 거라고 생각함. 에밀리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납치되어 어둠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면서 빛의 세계에서 '법'이라는 이름으로 배운 통제, 정의를 믿고 따르는 사람임. 하지만 어느날 그 어둠 속에서도 더 깊은 어둠속 벽장에서 시신들이 대량 발견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창 밖으로 환한 빛이 비치지만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 에밀리도 당연히 어둠 속에서 밝은 창을 본다. 그리고 더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면서 종국엔 진실을 알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함. 그렇게 달갑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된 에밀리는 베니치오에게 총을 겨누지만 쏘지 못한다. 빛의 세계의 사람으로 남기로 한 건 그녀의 선택일까, 아니면 나라라는 거대 조직이 부여한 운명 같은 걸까. 이 질문은 망설임 없이 원수의 자녀에게 방아쇠를 당기던 베니치오에게도 할 수 있다. 

베니치오는 늑대소굴 같은 어둠 속에서 에밀리에게 총을 겨눈다. 보면 죽은 딸이 생각난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총을 겨눌 수 있을까. 무법지대에서 살아온 자에게 조금의 인간미를 느끼고 싶던 나를 완벽하게 배신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섹시함) 짐승 역에 베니치오라니 감독이 너무 쉽게 간 경향이 있다.   

민간인이 있는 장소에서 일어난 총격전을 에밀리가 비판할 때 처음엔 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에밀리 말이 맞긴 하지만 왜 영화에선 심심찮게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도심에서의 총격전은 액션영화에서 흔한 요소다. 그리고 마블시리즈 히어로물에서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 아니야? 나라가 범죄조직을 이용해 불법을 통제?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영화에도 종종 나타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범죄조직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여기며 체스판 장기처럼 다루는... (물론 시카리오는 미국이 멕시코 카르텔을 컨트롤 하려고 했으니 훨씬 문제가 크지만) 어쨌든 좀 흔한 소재가 아닌가? 생각했다가 이내 깨달았다. 나는 이런 요소들을 그냥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걸. 지구 어딘가에선 누군가의 삶이자 누군가가 느끼는 공포다. 나를 비롯한 우리는 이런 장면을 너무 쉽게 오락요소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ㅅ' 더 쓰고 싶지만.. 힘두러

Monday, November13 19:29에 썼음